당신의 입술 끝에서 난도질당한 나의 본질에 대하여
연상호 감독의 신작<얼굴>은 범인을 쫓는 스릴러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막상 마주하게 되는 건 범인의 정체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거대한 ‘야만적 폭력성’이다.
1. 도장을 파는 손길과 낙인을 찍는 입술
주인공 영규는 시각장애인 전각 장인이다. 그는 아내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손끝의 감각과 마음으로 그녀를 아름답게 조각하며 40년을 보냈다. 반면, 세상은 그녀를 ‘괴물’이라 부르며 입술 끝으로 그 얼굴을 난도질했다.
이름을 정성스레 새기는 ‘전각'이 사랑의 기록이라면, 실체 없는 소문을 퍼뜨리는 세상의 ‘평가’는 한 개인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잔인한 낙인이다. 보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과, 보고도 혐오하는 사람들 중 누가 진짜 본질에 더 가까운지 묻게 된다.
2. ‘진실’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폭력
사건을 파헤치는 다큐멘터리 PD는 정의로워 보이지만, 사실 가난과 불행을 전시하고 소비하는 가해자와 다를 바 없다. “아버지와 닮았네요”라고 툭 던지는 그 쉬운 말들이 상대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 고민하지 않는다. 40년 전 공장 사람들의 폭력이 직접적이었다면, 지금 미디어의 폭력은 ‘진실’이라는 세련된 옷을 입고 타인의 삶을 다시 한번 박제하고 있다.
3. 마지막 사진을 기다린 당신에게
영화가 끝날 때쯤 많은 사람이 "그래서 진짜 엄마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데?"라며 확인하고 싶어 한다. 나 역시 호기심이 생겼지만, 문득 그 사진을 확인하려는 욕망 자체가 이미 우리가 가해자와 같은 선상에 있다는 증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속 얼굴이 예쁘면 안도하고, 정말 못생겼다면 "그럴 만했네"라고 판결 내릴 준비를 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외모로 본질을 규정짓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야말로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장 무서운 스릴러이다.
마무리하며: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
우리는 평생 타인에 의해 디자인된 이미지 속에서 살아간다. 이 영화가 남긴 숙제는 결국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 확인하려 하지 않는 용기: 영화의 마지막에 엄마의 사진이 공개되든 아니든, 그것을 '내 눈으로 확인해서 판결 내리겠다'는 욕망을 내려놓는 것.
- 질문의 방향을 돌리기: "그 여자의 얼굴이 어떠했나?"라고 묻는 대신, "왜 그들은 그토록 그 얼굴을 괴물로 만들고 싶어 했나?"라고 사회적 폭력의 기제를 묻는 태도.
- 내 안의 '야만성' 돌아보기: "나도 누군가의 얼굴에 페인트를 덧칠하고 있지는 않은가?"를 끊임없이 자문하는 것, 즉 자기 검열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가 아닐까.
진짜 본질이 무엇인지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타인의 얼굴을 쉽게 소비해왔는지 깨닫는 일이다.
'콘텐츠에관한콘텐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내일을 건네-가사 (0) | 2026.01.25 |
|---|---|
| 넷플릭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1) | 2026.01.17 |
| 넷플릭스 〈지옥〉 시즌 1 (1) | 2026.01.13 |
| [넷플릭스] 자백의 대가 (0) | 2026.01.13 |
| 📚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0) | 2025.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