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이야기/살기

버리고 있다

1.
180*90 책상을,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던
그 큰 책상을 보냈다.
그것을 보내기로 한 마음을
먹으면서부터
하나씩 하나씩
뒤져서 꺼내고 버리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갖고 있던 다 마신 와인병, 페리에
고장난 모카포트
큰 맘 먹고 샀지만 10페이지도 넘어가지 못한 두꺼운 책
40평대 아파트로 가기 전엔 햇빛보기 힘들,
그래서 향후 50년간은 쓸모가 없을(돈이 많아도 그리 큰 아파트로 갈 생각은 없으니) 장식품들,
스티커사진 가게를 방불케 했던 악세사리,모자,장신구들
그리고 또 그리고들...
짐은 가벼울 수록 좋고,
삶도 미니멀할 수록 반짝반짝할 수 있으니까
비우기로 한다.

언젠간 쓰겠지 하고
묻어둔 것들은
언젠간 잊혀지고
묻힌 채 썩게 마련이니.

그냥 여기서.
지금 단호하게
결정하자.



2.
몇달전 아이폰 ios을 업뎃하다가(정확히는 하고 나서니까 이건 버그고 팀쿡 개새끼) 연락처가 다 날라갔다
물론 리퍼 받은지 얼마되지 않은 때라
고대로 백업데이터가 존재했지만
왠지 하기 싫었다.
처음엔 귀찮았는데
그게 '없이 살아보지 뭐' 가 되었다.

근데 그게..
아무 불편도 없는 것이다.
어차피 자주 연락하는 사람은 전화가 오게 되어 있고
꼭 필요한 가족번호는 외우고 있고
또 신기하게도
문자를 보낼때 주소불러오기는 가능(그러니까 버그지)했으니까
딱히 전화번호부 안에 수백개의 예비연락처가 저장되어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안했다.
실제로 나에게 필요한
저장되어야 할 연락처는 채 20개가 되지 않았다.
필요에 의해 혹은 집안 대소사 때를 위해언젠간 연락할지도 모를,
전화가 와도 궁금해하며 번호를 유추할 수 없는 사람은 절대 전화가 오지않았고,(뭐 한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거의 없었다)
내가 걸 일도 없었다(원래 전화 연락을 잘 안함)
한밤 중에
외롭거나 갑자기 문득 전화번호부를 ㄱ부터 주르르르륵 내려가며 이 사람은 필요?삭제?통화?문자라도?이런 공상에 빠질 일이 없어졌다.
웃긴 것은
연락처가 텅 빈 와중에
서로간에 먼저 전화한 쪽이 상대일 경우 갑자기 빈 전화번호부에 그 사람이름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락처가 날라간 직후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던 요녀석은 전화번호부에 없으나
전화가 걸려왔던 동생의 이름은 전화번호부에 예의 그 이름으로 갑자기 부활해서 떡하니 들어가 있는 것이다.
내 전화번호부에 저장되어 떠 있는 이름들은 전부 그쪽에서 먼저 전화를 걸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왠지 그들을 아끼게 되었다.

3.
우리는 얼마나 필요없는 것들에 집착하며
언젠가 닿을 '지'도 모르는 인연에
연연해 하며
질척이고 있는가.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사는이야기 > 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04  (0) 2014.04.07
결론안남  (2) 2014.03.20
욕실 청소  (0) 2014.01.15
아직은 미흡하다  (0) 2014.01.13
결성하게 되었다.  (0) 2014.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