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에 접어들면서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고 그것이 내가 무언가를 결정하고 해야 할 때 중심이 된다는 것을 느낀다. 사실 이것에 시작은 굉장히 우연히, 우연한 날 아주 가까운 친척 언니와 밥을 먹으면서 시작되었다.
"땡땡아 너는 둘이 있을 때랑 여러명이 함께 있을 때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 내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부분이었기에 순간에는 굉장히 놀랐다. 그리고 나는 가깝고 나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이 더 있을지 나와 나를 보는 사람의 생각은 어떻게 다른지 큰 호기심과 궁금증을 갖고 나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대화의 충격은 아직 나에게 크게 남아있고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매우 자주 생각하며 살고 있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은 이미 그렇게 살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이것은 매우 늦은 자기 성찰이지 싶다. 하지만 나는 그 때라도 그 일을 맞닥뜨리게 된 것을 너무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뭘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 하며에 대한 단편적인 성향, 취향, 성격이 아닌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나의 모습에 대해서 좀 더 관찰하고 더 깊게 성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많은 나는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아 비교적
글쓰는 것이 이렇게나 좋은데 왜 글쓰는 것은 직업으로 할 수 없었는가
고등학교 때 방송부 생활을 하면서 라디오에 출연 한 적이 있다. 내가 사는 지역에만 방송 되는 작은 프로그램이었지만 그래도 방송에 데뷔 한다는 것 때문에 나는 굉장히 설레고 긴장했었다. 물론 그 인터뷰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2학년 선배들이었지만 운좋게도 1학년인 나를 인터뷰 하는 시간이 있었다. 질문은 단 하나였지만 질문을 받고 나는 굉장히 경직된 상태에서 재미없고 뻔한 대답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런 대답을 한 것에 자신을 실망스러워 하며 쫄보처럼 대답했던 스스로를 후회했던 기억이 난다. 왜 그랬을까. 그 당시의 나는 누가 봐도 재치 있고 순발력 넘치는 사람으로 공인되고 있었는데 나는 왜 스스로도 납득 하지 못할 세상 재미없는 지루한 대답을 내놓고 만걸까. 이해가 되지 않았고 주변의 반응도 그랬던 기억이 난다. 나는 아 나는 방송 재질이 아니구나, 학교는 커녕 방구석 스타일 뿐이었구나 라며 나 자신을 평가 절하했다.
몇 년 전 아니 한 10년 쯤 되었을까 기획사 잡지사에서 에디터로 일한 적이 있다. 글쓰는 것을 매우 좋아했던 내가 잡지에서 한 꼭지를 맡아 기사를 쓴다는 것은 어릴때부터 꿈에 그리던 일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 그곳에서의 나는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무얼 써야 할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고 억지로 마감을 하고 퇴고를 하며 아, 나는 글을 이다지도 못 쓰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 만으로 가득찼던 것 같다. 그리고 정말 맛있게, 개성있게 글을 쓰는 옆 팀 선배를 보면서 부러워만 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나는 사실 글쓰기와는 전혀 맞지 않는 형편 없는 에디터였던 걸까.
그리고 또 세월이 흘러 지금. 드디어 나는 '그 일'을 '나라는 사람' 더 큰 테두리 안에서 바라 보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틀 안에 있을 때 무언가를 하지 못 하는 사람이었구나'. 이 도 트임은 계기가 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달리기를 할 때였다. 가끔 나는 < 런데이 >라는 어플의 도움을 받으며 달리기 운동을 한다. 이 프로그램은 내 컨디션이나 레벨에 따라서 그날의 플랜을 결정하면, 트레이너가 음성으로 알림과 응원 메세지를 보내 코칭을 해 준다. 어떻게 달리고 있으며 어떻게 달려야 하는지, 지금부터 전속력으로 뛰세요, 이제 2분간 쉬세요. 다시 달리세요. 실시간 피티선생님이 도와주는 듯한 느낌이 드는 훌륭한 앱이다. 달리기라는 것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은 좀 더 빨리뛰거나 멀리 뛰는 것이다. 하지만 꽤 오래전부터 달리기를 해온 나는 더 높은 레벨에 프로그램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비슷한 초급 훈련만 반복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현재도 충분히 힘들도 숨차며, 아직 제대로 잘 하고 있지 않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딱 한번 10키로 마라톤을 나간적은 있지만 그 이외에는 5키로도 겨우 느린 속도로 해내고 있다. '자주 하지 않기 때문에 못하는 거야' '운동에는 소질이 없기 때문에 페이스가 늘지 않아' 속상한 마음도 있지만 그럴만 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갑자기 자유 달리기를 선택해 보았다. 기분이 별로였던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날따라 짜여진 프로그램 말고 그냥 막 뛰어 보기로 했다. 아무렇게나 뛰어도 느리게 뛰어도 괜찮아, 기록은 포기하자 라고 생각을 하면서. 자유달리기는 코치가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 진짜 내 맘대로 뛰면 결과만 알려줄 뿐이다. 그런데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평소에 플랜대로 했던 운동 때와 비슷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거 뭐지?? 힘든 플랜이지만 코칭 해 주는 친절한 트레이너의 음성 있었기 때문에 그 틀 안에서 목표를 향해 달렸기 때문에 그것들이 나를 좀 더응원해 주고 밀어 주는 역할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스스로 혼자 프로그램을 진행해도 같은 기록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다른 점이 있었다. 나의 기분이었다. 해방감이었다. 내 맘대로 내가 원하는 속도대로 내가 원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달리니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그동안은 짜여진 플랜 때문에 약간은 갑갑하고 억지로 하는 느낌이 있었다. 조금씩 커스터마이징이 되면 좋을텐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하지만 언제 뛰고 언제 쉴지 또 얼마나 쉬고 다시 뛸지 내 맘대로 규칙 없이 할 때는 오히려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무한정 걸으며 쉬는 구간을 만들거라는 스스로를 평가절하하는 예상이 틀렸다. 나 스스로를 내가 응원을 하게 되었다. 굉장한 경험이었다.
그때의 경험으로 '아, 나는 자유로움 속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