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하늘은 물결진 비단을 펼치고,
한 점 없는 새의 그림자는
바람의 속삭임 속에 묻힌다.
고요의 실은 엉켜 흐르며
걸음을 이어가는 그림자들을 감싼다.
날카로운 모퉁이에 걸린 달빛,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속
목소리들은 둥근 돌처럼 가라앉는다.
마디와 마디를 지나쳐 흩어지는 시간은
가만히 숨을 멈춘 별의 잠꼬대 같다.
잊히는 것은 없다,
길을 잃은 빗방울도
땅 속 어딘가,
무명의 뿌리를 적시며
다시 피어나는 무언가가 된다.
구름 속에서 비늘처럼 빛나던 꿈들,
누구의 것이었는지도 모를
그 은빛 잔향이
우리를 품는다.
반복과 어둠, 그리고 부질없음의 심연에서
언젠가 우리는 우리를 만날 것이다.